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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에서 세계를 설계한다…현대차·기아, 데이터와 금속이 끓는 '기술 용광로' [김홍모의부릉부릉]

  • 8일 전 / 2025.07.26 08:39 /
  • 조회수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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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실험과 데이터의 집합소
3,400마력 송풍기…'매미'급 강풍 재현
'아이오닉 6' 기반 시험차, Cd 0.144 달성
세계 도로 요철, 한 자리서 재현
'조용한 전기차'의 청각 디자인 구축

[앵커]
기술이 곧 경쟁력인 전기차 시장에서, 개발 속도와 품질 검증이 기업가치에 직결됩니다. 현대차그룹이 공개한 연구소 내부는 이 같은 고민의 최전선이었습니다. 김홍모 기자의 현장 리포트입니다.

[리포트]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현대차그룹 남양기술연구소. 부지만 344만㎡(105만 평)로, 축구장 약 480개를 합쳐 놓은 규모입니다.

이 방대한 공간 안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차세대 전기차 기술이 처음 설계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수천 번의 실험과 데이터가 축적됩니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대수 100만 대 돌파의 시작점이 바로 이곳입니다.

우선 눈여겨 볼 곳은 공력시험동입니다. 본격적인 주행 테스트에 투입되기 전의 차량들이 이곳에서 공기와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요.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는 대신, 도로 위를 바람이 달리는 듯한 거대한 풍동 시설이 눈길을 끕니다. 축구장 크기와 맞먹는 6,000㎡ 규모 실내에 직경 8.4m의 거대한 송풍기가 돌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시속 200km에 달하는 바람이 차량을 휘감습니다.

그 힘은 무려 3,400마력에 이르는데, 이는 역대 태풍 중 손에 꼽을 정도의 위력을 가진 '매미'급 강풍을 재현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설비입니다.

바닥에는 실제 도로처럼 움직이는 회전 벨트가 깔려 있어, 멈춰 선 차량 아래로 노면이 달리는 환경을 구현합니다. 덕분에 바퀴 아래 공기 흐름까지 현실과 동일하게 만들어 공기저항을 정밀 측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바닥 센서는 500원짜리 동전 하나의 무게 변화까지 감지할 정도로 민감해, 차량 형상이나 부품 변경에 따른 미세한 공력 성능 차이도 놓치지 않습니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가 전기차 주행거리를 좌우하는 공기저항 감소로 이어집니다. 이날 취재진에게 공개된 '아이오닉6' 기반의 연구용 콘셉트 전기차는 세계 최저 공기저항계수인 0.144를 달성해 화제가 됐습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선보인 가장 낮은 수치가 0.17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기록입니다.

현대차·기아 공력개발팀 박상현 팀장은 "공기저항계수(Cd)를 0.01 낮추면 전기차 1회 충전 주행거리가 약 6.4km 늘어나고, 이는 약 25만원 상당의 배터리를 추가로 탑재하는 효과"라고 설명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바람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곧 배터리 성능을 높이는 지름길인 셈입니다. 다만, 앞 유리창과 보닛 사이의 이격 공간을 메우는 특화설계 등 초저항 콘셉트 기술들은 아직 연구 단계로, 향후 양산차 공력 개선에 순차적으로 적용될 예정입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환경시험동입니다. 한여름 폭염 속에 연구소 건물 안에 들어서니, 거짓말처럼 눈보라 치는 한겨울 풍경이 펼쳐집니다. 영하 30℃ 혹한의 설원부터 50℃ 사막의 태양까지, 지구상의 거의 모든 기후 환경을 이 실내에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거대한 챔버 안에는 전기차 한 대가 바퀴를 굴리며 쉼없이 달리고 있습니다. 머리 위로는 최대 1,200W/㎡ 세기의 인공 태양빛이 내리쬐고, 앞쪽 3.3m 대형 팬에서는 시속 120km의 뜨거운 바람이 쏟아져 나옵니다. 50℃의 열기가 가득했던 이 공간에서 발걸음을 몇발자국 옮기면 눈보라 치는 북극으로 변신합니다.

[스탠딩]
"7월 한여름인 현재 실외 온도는 30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지만, 영하 40도까지 설정 가능한 이곳 강설 강우 풍동 시험실은 새햐안 눈으로 덮여져 있습니다.

극한의 환경 속 차량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어느때건 실험할 수 있도록 꾸며진 공간입니다."

천장과 벽면의 분사장치가 하얀 눈을 뿌려대자, 시험 중인 차량이 금세 눈에 뒤덮였습니다. 실제 북유럽 겨울에도 끄떡없는 전기차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혹한기 훈련인 셈입니다.

[인터뷰] 김태한 / 현대차·기아 열에너지차량시험2팀 파트장
"북유럽처럼 영하 30도의 극한 환경에서 고속 주행을 할 경우, 많은 눈이 프렁크나 실내로 유입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문제가 없는지를 사전에 검토하고, 실제 시험을 통해 프렁크나 충전구 등에 눈이 들어오는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R&H 성능개발동으로 가보겠습니다. R&H는 Ride & Handling, 즉 승차감과 조향 안정성을 뜻하는데요. 전기차 시대에 들어 차량 무게는 늘고 무게중심은 낮아졌으며, 모터의 폭발적인 가속력까지 더해지면서 차체 거동 특성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때문에 노면 충격을 부드럽게 거르는 승차감과 고속에서도 한층 안정된 핸들링 성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남양연구소는 이에 대응해 세계 최고 수준의 가상 주행 시험 장비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곳 핸들링 주행시험기 앞에는 코나 일렉트릭 차량이 거대한 거치대에 단단히 고정돼 있습니다. 운전석에는 사람이 아닌 로봇 팔이 앉아 있는 모습인데요. 120인치 대형 스크린에는 실제 서킷이 펼쳐지고, 시험이 시작되자 로봇이 스티어링 휠과 페달을 조작하며 자동차를 가상 코스대로 몰아갑니다.

마치 실제 도로를 달리는 듯 차체가 기울고 방향을 트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이 핸들링 시뮬레이터는 전 세계에 단 두 대밖에 없는 최신 장비로, 다양한 노면 조건에서 반복 시험을 통해 차량의 한계 거동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연구원들은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기차에 최적화된 조향 성능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용섭 / 현대차·기아 주행성능기술팀 파트장
"과거 내연기관차에서는 엔진에서 발생하는 진동이 많았는데, 전기차로 오면서 이런 엔진 진동이 사라지다 보니, 오히려 노면에서 올라오는 진동을 더 민감하게 느끼는 고객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전기차에 적합한 진동 특성과 승차감을 어떻게 개발할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옆에 위치한 승차감 주행시험기에서는 아이오닉 5 후륜 서스펜션 모듈만 따로 떼어내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면을 모사한 평평한 벨트 위에서 타이어가 회전하고, 유압 액추에이터가 초당 최대 40회까지 노면 요철을 입력합니다. 북미의 거친 포장도로부터 유럽의 매끈한 고속도로까지, 세계 각지의 도로 데이터를 불러와 현지와 똑같은 조건으로 한 자리에서 재현할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가상 주행 환경을 활용해 한 대의 차량으로도 단시간 내 여러 지역의 노면 조건을 시험할 수 있어 개발 기간과 비용을 혁신적으로 단축시키는 효과를 가집니다. 실제 도로 시험의 날씨나 운전자 변수 없이 언제나 일관된 조건에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인터뷰] 이용섭 / 현대차·기아 주행성능기술팀 파트장
"현대차그룹은 차량을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각 지역에 맞는 평가가 중요합니다.

남양연구소에서는 가상의 환경을 구축해 굳이 차량을 해외에 보내지 않더라도 단시간 내에 다양한 해외 노면을 동시에 평가할 수 있어, 차량 성능을 집중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NVH 동입니다. NVH는 소음(Noise)·진동(Vibration)·불쾌감(Harshness)을 통칭하는데요. 엔진이 사라진 전기차에서는 오히려 바람소리나 바닥 소음 같은 잡음이 더 부각되기 때문에, 남양연구소는 정숙성을 높이면서도 운전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소리를 디자인하는 연구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 건물의 로드노이즈 시험실은 사방을 두꺼운 흡음재로 둘러싸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까지 잡아내는 무향실입니다. 바닥의 롤러 위에는 실제 도로의 거친 포장 패치가 부착되어 있어, 자동차가 달릴 때 나는 노면 소음을 실시간으로 재현합니다.

조용한 전기차 실내에서는 작은 도로 돌기와 타이어 마찰음도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엔지니어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주파수의 소음을 계측하고 차체 어디에서 소리가 증폭되는지 원인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측정 결과는 차체 구조 보강이나 방음 소재 적용 등의 개선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고객이 느끼는 소음을 줄이는 데 활용됩니다.

이어 방문한 몰입형 음향 스튜디오에서는 미래 자동차의 사운드를 설계하는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연구원이 VR 헤드셋을 착용하자 눈앞에 가상의 도로 환경이 펼쳐지고, 360도 스피커 시스템을 통해 실제 주행과 똑같은 입체 음향이 재생됩니다.

엔진 소리가 없는 전기차라 해도, 주행 중에는 풍절음이나 주변 환경음, 차량 경고음 등이 어우러져 복합적인 청각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이 스튜디오에서는 전 세계 어떤 도로 상황이든 가상으로 구현해, 차량 내부로 유입되는 소리를 미리 체험하고 최적의 NVH 성능을 검증합니다.

예를 들어, 전기차에 의무 장착되는 저속 주행 경고음(가상 엔진음)의 경우 이 가상환경에서 보행자가 어떻게 들을지까지 시뮬레이션하면서, 안전성과 쾌적함을 모두 만족시키는 음색과 볼륨을 찾아냅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소리까지 다듬는 노력이 모여 정숙한 전기차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수백 번의 바람과 혹한, 도로 주행 시뮬레이션을 거쳐 한 대의 전기차가 비로소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자동차 강국 대한민국이라는 명성이 이어지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연구원들의 노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차·기아는 이 남양기술연구소를 앞세워 미래 모빌리티 경쟁에서 더욱 앞서나가겠다는 포부입니다. 지금까지 김홍모의 부릉부릉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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